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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1) 1994년 그때 그 시절

활짝웃자^^ 2013. 12. 18. 23:49

드라마 하나로 추억 놀이에 빠진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지금의 30대들에게 말랑한 추억거리로 남아 있는 그때 그 시절.

 

서태지 대통령
1990년대 초반의 아이콘은 당연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1992년 데뷔해 엄청난 인기 바람을 몰고 온 그들은 1994년에는 거의 대중문화계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 당시 발매한 〈발해를 꿈꾸며〉 앨범 속에 수록된 ‘교실 이데아’는 쇼킹한 가사로 중고딩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는 여느 가수들과 다르게 사회 문제를 다룬 가사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HOT가 ‘전사의 후예’ 같은 노래를 낼 수 있었던 건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생소한 레게 리듬을 선보인 김건모나 세련된 힙합을 소개한 듀스, 귀여운 댄스와 가사로 화제였던 투투,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 015B 등이 그 당시 인기 가수들.


들어는 봤나, X세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데서 유래된 X세대. 199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X세대는 신세대를 일컫는 말로 캐나다의 더글러스 쿠플랜드가 쓴 소설 제목에서 유래했다. 소설은 1991년에 출간됐지만 우리나라에서 X세대의 유행은 1994년에 열풍이 불었다. 당시 신세대 아이콘이었던 손지창, 이병헌, 김원준, 신은경, 김지호 등은 광고나 드라마에서 X세대의 전형으로 통했다.


대학농구의 인기
지금이야 야구장에 여자들이 몰려들지만 그 당시 여학생들에겐 야구보다 농구가 훨씬 더 인기였다. 훤칠한 키의 대학생 오빠들이 무리지어 뛰어다니는 대학농구는 지금의 프로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얼마 전 〈우리 동네 예체능〉에 등장한 추억의 인물들의 말을 빌리자면 여학생들은 연세대를, 남학생들은 고려대와 중앙대를 응원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배 나온 아저씨가 된 우지원, 문경은, 전희철 등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였다. 여기에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기름을 부어, 농구의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삐삐와 공중전화 카드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사는 것처럼 1994년의 아이들은 삐삐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지금이야 휴대전화 없는 아이들이 없지만 그때 당시 삐삐는 대학에나 들어가야 받을 수 있는 선물이었다. 음성녹음이란 게 되기 이전에는 그저 전화번호를 남기는 호출기였고 이것을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숫자 언어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8282는 기본이고 ‘1010235-열열이 사모’ ‘0124-영원히 사랑해’ 등 주로 연애하는 이들의 비밀 언어로 통했다. 음성 녹음을 듣거나 호출 온 전화번호로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것도 지금은 보기 힘든 광경. 삐삐와 함께 필수품은 공중전화 카드였다.


추억의 워크맨
〈무한도전〉에서 박명수는 옛날을 추억하며 유재석에서 ‘마이마이’ 카세트를 선물하고자 했다. ‘워크맨’이라 불리던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는 삼성, 엘지(당시 금성)에서 ‘아하’와 ‘마이마이’라는 브랜드로 출시되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단연 최고는 일본 브랜드인 소니의 워크맨. 어학 테이프를 듣겠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선물 받아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던 기억, 누구나 있을 것이다. 밤 10시가 되면 가수 이문세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는 재미도 남달랐다. 그러고 보니 좋아하는 아이가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테이프에 담아 듣고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의 디지털 기기들이 참 편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그때 그 시절의 노래방 테이프가 그립기도 하다.

 
클럽의 전신, 신촌과 강남 록카페
2000년대의 젊은 세대들이 클럽에 다니는 것처럼 1994년에는 록카페가 성행했다. 지금 홍대와 강남으로 나뉘는 클럽처럼 그때도 강남과 신촌 지역으로 나뉘어 밀집되어 있었다. 대학가였던 신촌은 조금 저렴하게 다닐 수 있는 곳, 강남의 록카페는 돈 좀 있다 싶은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지금의 클럽처럼 그때도 나름의 물관리를 해 평범하거나 어수룩한 친구들은 일명 ‘뺀찌’를 먹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깨알 같은 록카페 일화 등을 보면 잊을 뻔했던 추억까지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부유층의 상징, 오렌지족
지금의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에서 화려하게 사는 젊은 세대를 오렌지족이라 불렀다. 수입 과일인 오렌지를 빗댄 것이 조금은 비아냥이 섞인 단어. 그 당시 강남에 유학생이 천지였고 수입차가 많지 않던 시절 외제차들이 즐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TV 프로그램에는 ‘야타족’이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고급 차를 끌고 나와 예쁜 여자를 꼬일 때 ‘야! 타!’라고 했다는 데서 나온 이야기. 고급스러운 맛은 없다. 졸부라는 느낌이 더 강한 단어.
/ 이미라 기자

 

출처 : MLounge 리빙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