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est/Science

디지털 시대의 클래식 음악

활짝웃자^^ 2013. 10. 11. 16:45

1877년 11월에 토머스 에디슨이 새로 만든 묘한 기계 앞에서 ‘메리는 새끼양을 가졌네(Mary had a little lamb)’라는 노래를 불렀던 순간, 그 자신은 아마 몰랐겠지만 음악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 ‘말하는 기계(speaking machine)’는 한동안 그저 호기심을 자아내는 장난감 정도로 취급당해서 진지한 음악가들에게 외면당했지만, 이 기계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신하면서 원통(실린더)을 원반(디스크)로 바꾸는 등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던 에밀 벌리너(Emil Berliner) 같은 선구자들 덕분에 20세기가 접어들 무렵부터는 점차 음악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 뒤 크고 작은 굴곡은 있었지만 전기 녹음, 테이프 녹음, 엘피(LP), 스테레오 녹음 등 눈부신 기술 발전이 잇따라 이루어지면서 음반산업은 에디슨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엄청난 규모의 산업이 되었다.

 

소리가 나는 동시에 사라지기 시작하는 음악은 미술이나 건축에 비해서 본질적으로 ‘덧없는’ 예술이었다. 그러나 소리를 ‘잡아둘 수 있는’ 녹음 기술이 등장하면서 음악은 비록 ‘통조림에 담긴 상태’일지는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영속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베토벤과 쇼팽의 피아노 연주,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는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영원히 사라지고 전설로만 남아있지만 후배 연주자들은 자신의 예술을 후세에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녹음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가령 20세기 접어들어 러시아, 미국, 독일 사람들이 같은 연주를 듣게 되면서 각 나라와 유파(school)의 고유한 개성이 흐려지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도 일상 생활 도처에 음악이 범람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에 대한 자각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는 역설적인 주장도 귀 기울여 봄직하다. 실제로 이제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나 비발디의 <사계>는 원하지 않아도 반강제적으로 귀에 들어오는 ‘엘리베이터 음악’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음반 매체는 1970년대에 나온 디지털 녹음과 1982년에 처음으로 등장한 컴팩트 디스크(CD)로 그 정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음반산업의 혁명은 그 안에 불안의 씨앗을 품고 있었으니, 음반이라는 매체 없이도 음악의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녹음이 거꾸로 음반 산업의 목을 조르게 된 것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마다 있었던 음반점은 이제 거의 사라졌으며, 실제로 이제는 음반을 ‘돈은 들지만 경력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만 하는 명함’ 쯤으로 생각하는 음악가들마저 나타나고 있다.


마리아 칼라스와 비틀즈를 배출하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했던 EMI가 이리저리 팔리다가 결국 몇 개로 쪼개져서 사라졌다는 최근 외신 뉴스는 한 세기를 풍미했던 음반 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CD이후 새로운 매체가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는 10년 넘게 논쟁이 이어지면서 몇몇 후보가 떠올랐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특히 곡의 길이가 길고 음질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클래식 음악의 경우 음반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반면,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몇몇 명연주자나 오케스트라는 자체 음반사를 설립하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 방법은 누구나 따라할 수도 없을뿐더러 예술가에게 거의 비현실적인 노력과 경제적 부담을 요구하고 있어서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재현 예술을 담아낸 음반산업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어쩌면 20세기의 음반 산업이 지나치게 비대했기에 이제 제 자리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우리는 음악을 들을 것이라는 점, 그 방법은 점점 더 다양해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예술가와 청중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음반산업의 가치는 유효하리라는 점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LP가 최근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유행하면서 매년 놀라운 증가세를 보이는가 하면 몇몇 음반사는 고음질의 파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고 있는 현상이 좋은 예다.

 

 

20세기 중반 이후 음반 매체에서 클래식 음악의 지분은 꾸준히 축소되었지만, 음악의 성격상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클래식 음악은 이제 새로운 노력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르네상스의 여명이 밝아오기 전 중세시대의 마지막이 가장 혹독했듯이,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르네상스의 출발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이준형 / 음악칼럼니스트

 

출처 : 미래창조과학부 웹진